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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힘겨루기_2016

by 진실한토마토 2017. 5. 5.

만 7살 반 딸아이. 키워보니. 뭐든 어떤 성격이라 결론지을 수는 없지만. 딸아이는 분명 뭐든 오래 맘에 두진 않는 편에 속한다. 그래서일까 그때그때 모든 감정에 충실한 아이이기도 하다. 화가날땐 화를내고 슬플땐 울어버리고 할말이 있으면 거침없이 내뱉는, 때로는 내배에서 낳은아이 맞나 하는 그런 당당함을 가진 또 때로는 나와 너무나 닮아 소심해지기도하는 그런 아이, 바로 딸아이의 모습이다.

 

그런 딸아이는 담아놓는것이 없어 그런지 나와 남편과 적지않게 부딪히곤 한다. 내아이 역시 '좋은아이'가 되고싶고 칭찬받고싶고 또 인정받고싶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다른 사람의 지시에 따르기보다는 자기가 하고자하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다. 아니 그것이 과해 아이는 '반대로' 행동하며 자신을 드러내기도한다, 즉 녀석은 반항심이 남다른게아닐까.

 

돌아보면 나역시 비슷한 유년시절을 보냈기에 찬성하는 부분반 반대하는 부분반, 심지어는 모두의 인생처럼 나역시 후회하는 부분이 있다. 언제나 '내것'이 가장 가치있고 좋은 이유를 몇가지씩 만들어내곤 하는 나로서는 인생에 '후회' 또는 '낙담''실패'등의 단어를 언급해 본 적이 사실은 그닥 없다. 그건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까. 어째되었던 마흔이 된 나는 남들 눈에는 꽤 자기철학도 있고 나름 행복스럽게 잘 살고있어 보임에는 틀림없지만. 내 내면에서만큼은 온전히 인정할 수가 없는것 같다. 나는 과거의 나보다 성숙하고 깨달음이 많지만. 나에게 집중하는 것 이상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만큼 이웃을 그리고 타인을 의식하며 살고있다는 것을, 더이상 부정할 수 없다.

 

물론 나와 같을순 없겠지만 아이가 나와 비슷하게 인생을 돌아돌아 온다면. 시작점이 남들보다 한템포씩 아니 더하면 몇년을 더딜텐데 늦은만큼 몰입하고 정성을 쏟으며 커다란 성과를 얻을수도 있겠지만 마땅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과정'에서 엊을수 있는 소중한 경험과 기초적인 지식들을 간과하게 될 것 같아, 나는 내심 걱정이다.

 

아이와의 힘겨루기 패턴은 늘 이렇다. 아이는 뭐든 빠르게 습득하는 것에 비해 동작이 매우 느리다. TV와 장난감을 좋아하진 않지만 친구와 노는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성적은 좋은편에 속하나 '하고자하는' 일반적인 경쟁심리가 아직인 아이이다. 그래서 주어진 숙제를 늘 천천히 밥을 먹던 숙제를 하던 어떤 긍정적인 보상이 따른다해도 아이는 제시간에 완성해야하는 저만의 '이유'를 아직 찾지 못한 그런. 그러다보니 언제나 시간에 쫒기고 나는 어느새 아이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때론 그런 엄마에게 반발하는 아이의 '고의성'으로 보이는 '딴짓'에  나는 분노하곤한다. 그리고 아이 역시 그런 엄마의 모습에 불안을 느끼는데 그것이 짜증과 심지어는 물건을 집어던지는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여기서 '그런엄마'의 모습이란 어떤모습일까. 사실은 엄마의 모습이 아닌. 아이 제 스스로 잘해내지못한 것에 아이는 분노하고 있는 것 일 수도 있다는. 그래서 실망하는 엄마 화난 엄마, 그런 모습을 아이는 더없이 견딜 수 없어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아무리 그러한 아이의 마음을 읽어냈더라도 나역시 당장은 보여지는 아이의 태도에 분노하고만다는 사실. 그래서 이런 일촉즉발인 상황에서 난 아이에게 늘 타임아웃을 제안하지만-타임아웃 제안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타협하지만 아이는 분노하지 않을때에는 늘 친절하고 이성적이다-아이는 몇차례 타임아웃의 긍정적인 효과를 맛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쉽게 수긍하지는 못한다. 

 

결국 나는 아이의 망가진 태도를 수습하기 어려울때면 '침묵'으로 인내하려하지만 그조차도 아이는 쉽게 허용하지 않는것이 문제. 위에 언급했듯 아이 역시 잘못한 제모습이 못마땅해 더더욱 삐뚤어져 아이는 나를 자극한다. 게다가 나역시 심하게 빈정상할땐 아이에게 몹쓸말들을 해버리곤 하는데. 그것이 때리는 것보다는 나을것이라며 사실 또다른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언어폭력.

 

허나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면 우린 언제 그랬냐는 듯 늘 마음을 터놓고 서로의 잘못에 대해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곤하는데 아이는 엄마가 홧김에 내뱉는 말들이 제일 싫단다. 나도 그런 내모습이 제일 싫지만 마찬가지로 그렇게 못난 내모습까지 드러내야하는 상황이 비겁하지만 조금은 원망스럽다.

 

물론 나는 내가 '이상적인' 엄마에 속하는지는 자신이 없지만 최소한 '다수'에 속하는 엄마는 아니다. 성적이 최고라하지도 아이에게 물질적 상벌을 제시하는것도 아니며 세상엔 그보다 가치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시시각각 아이와 공감하고 싶어하는 엄마이려하는 또 적어도 그러한 '방향'으로 가고있는 엄마임엔 틀림이 없다. 설령 끊임없이 흔들리더라도.

 

혹 묻는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느냐고. 이 역시 나에게 주어진 현실적인 모순이며 숙제이다. 내가 선택한 일반적 교육환경은 '아이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잘못한 것을 인식하고 깨닫고 기꺼이 개선하기까지의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학교는 이미 학부모를 교육환경으로 초대했고 즉 긍정적인 면과 함께 부정적인 부분까지 우리가 안고가야하게되었다. 아이의 인생에 혹은 '지나치게 많이' 또 때론 '조금도 전혀' 개입하거나 관심두지 못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적어도 내가 어릴적엔 부모님이 그럴 여유도 없었거니와 지금처럼 개입하지않아도 그 어느 선생님도 아이의 숙제를 부모의 탓으로 돌리진 않았던 것 같다. 혼나도 아이의 몫, 아이의 행동엔 늘 아이 스스로 책임져야하는 것들이 더 많이 뒤따랐었다.

 

물론 설사 환경이 그렇다하더라도 '좀 힘겨워도' 기껏해야 잠시 내가 민망하거나 주변의 일시적이고 부정적인 시선을 견뎌내기만 한다면 충분히 그럴 용기를 갖고 있다면 조금은 다들까. 허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나만큼 그어린 아이 역시 견뎌내야할 부분이라면 엄마로써 어느정도는 세상과 타협을 해야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내 이유이다. 나는 아이를 내버려두되 학교에서 선생님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것들에 협조해야하고 아이가 세상적인 평가에 시달리지 않도록 또 때로는 일반적인 것에 지나치게 반감을 갖지 않도록 '적당한' 교육을 해야하는 것이다.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또 필요한건 '애쓰지 않는 가정교육' 즉 적당히 내려놓기가 아니겠는가. 늘 그렇지만 교육이던 그 무엇이던 적당함을 지키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더군다나 그조차 '애쓰다보면' 어느새 지나친것이 되어간다.

 

아. 오늘의 글엔 '지나침'이 많은것같다. 그래도 일단 저장.  



출처: http://mmaum.tistory.com/category/아이의 방 [마음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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