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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손질 초간단 방법

by 진실한토마토 2020. 9. 3.
전복손질하는 초간단 방법

1. 깨끗한 솔로 전복을 박박 싰는다.
2. 굵은 소금을 살짝 뿌려준다.
3. 숟가락으로 전복을 통째로 떼낸다.
4. 내장은 떼내고 이는 가위로 싹뚝

 

 

스며든다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좀 전에 열심히 ‘간장게장’을 검색해서 찾아온 안도현 님의 <스며든다는 것>이란 시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시의 제목을 <간장게장>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나처럼 말이다. 이 시를 보며 나는 특히 두 구절에서 목이 멘다. 그 첫 번째는 ‘울컥울컥 등판에 쏟아지는 간장’을 묘사할 때, 그리고 두 번째는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라는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기 바로 직전이다. 오늘도 역시나 그렇다. 마침 딸아이에게 읽어주던 중이었는데 ‘아이고 슬퍼서 못 읽겠네’라고 휴지로 코를 ‘팽~’ 풀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 뚝 떨어트리고 말았다. 어쩜 매번 나를 울리는지.

 

오늘은 태어나 처음으로 전복을 손질한 날이다. 원래부터 미끈거리는 해산물 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살아있는 전복이라니. 내일 중요한 손님이 오기로 되어있어 크게 마음먹고 전복을 샀는데 세상에 깜짝이야 글쎄 살아있다. 인터넷상에서 주문한 건데 나는 꼭 한 번씩 이렇게 중요한 단어를 놓치고 만다. 큰일 났다 오두방정을 떨며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바스락바스락 생각했던 것보다 힘찬 움직임이 당장이라도 비닐봉지를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일단 왼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녀석들의 껍데기를 들어 올렸다 내려놓기를 여섯 번, 순간 끔찍한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 필히 이 녀석들을 처리해야 할 것 같다. 엄마님 말씀이 가장 신선할 때 숟가락으로 녀석들을 분리해내야 한단다. 한참 긴장해서 전화 통화를 하는데 그중 한 마리가 힘차게 허리를 비틀더니 바닥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롱롱이도 깜짝 놀라 낮은 포복 자세를 하더니 킁킁 냄새를 맡는다. 나는 서둘러 녀석을 다시 조리대에 올려놨다. 전복들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흘끔흘끔 곁눈질을 하며 통화를 끝낸 나는 용기를 내어 일단 소금을 꺼냈다. 마침 굶은 소금이 없어 맛소금을 뿌렸는데 설마 아픈 걸까. 몹시 꿈틀거리는 녀석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목덜미가 당기며 소름이 돋는다. 이제 올 것이 왔다. 나는 숟가락을 잡고 살짝 굳어버린 녀석의 엉덩이를 들어 올린 후 껍데기에서 떼어내려고 순간 바짝 힘을 주었다. '조금만 참아. 이제 곧 끝날 테니까.' 온몸에 힘이 들어간 그 몇 분 동안, 나는 간장게장이란 시를 떠올린 거다. 아니, <스며든다는 것>

 

마지막으로 나는 전복들을 가지런히 담아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내일이면 식탁에서 최고로 때깔 나는 요리로 생을 마감할 녀석들에게 나는 미안하고도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아 참, 나는 간장게장을 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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