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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호날두' 마저 코로나19 확진

by 진실한토마토 2020. 10. 15.

평소 아무리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한때 박지성 선수와도 한 팀에서 활동한 적이 있으며 축구 선수로는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게다가 호날두는 기부천사로도 유명하며 심지어 헌혈을 하기 위해서 몸에 문신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알려진 선수인데 그런 훌륭한 선수가 글쎄 코로나 19 양성 판정을 받고 격리 중이라고 한다.

 

 

 

사실 최근 축구 선수들의 코로나19 감염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번 호날두의 경우 그 파급력이 남다르다는데. 일단 호날두는 '무증상' 환자라고 한다. 호날두의 경우 지난 12일 먼저 프랑스와의 경기를 치렀고 그와 접촉한 선수들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향후 격리기간 동안 경기에도 참전할 수 없으니 정말이지 총체적 난국이지 않은가 싶다. 게다가 11월 유럽 원정을 준비 중인 한국 축구 대표팀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코로나 19는 정말 유사이래 최악의 재난이지 않은가! 더더욱 염려스러운 건 아직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뉴스로 접하는 코로나19 피해상황 외에도 지인들 중 여행 혹은 친척 방문차 해외로 나갔다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 쪽으로 여행을 하던 도중 코로나 19 발생으로 인해 현지에 남아 아이들을 학교에 등록시키는 케이스도 있었다는. 물론 모든 수업은 '인터넷 수업'이다. 이처럼 코로나 19가 인류에게 남긴 스토리는 차고 넘친다. 코로나19 사태가 지금보다 심각할 시기에는 우리 모두가 재난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하루 빨리 코로나 19가 종식되고 모든 것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기를. 

 

포스팅을 마치며, '호날두'선수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호날두는 누구인가? 



나는 빈민가의 외톨이 소년이었다.

나는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가난이 너무나 싫었지만

도망치고 또 도망쳐도 결국 가난은 나를 잡아먹었다.

나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아버지가 술은 마시면 나는 너무 두려웠다.
형은 마약중독자였다.
형은 약에 취해 삶에 의욕도 없었다.

가난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청소부 일을 하는 우리 어머니였다.
청소부 일을 하는 어머니가 난 너무 부끄러웠다.

어느 날 빈민가 놀이터에서 혼자 흙장난을 치던 나에게 보인 것은

저 멀리서 축구를 하는 동네 친구들이었다.

내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나를 축구에 껴주지는 않았지만 원망하지는 않았다.
우연히 날아온 축구공을 찼을 때 난 처음으로 희열이란 것을 느꼈다.


"어머니 저도 축구가 하고 싶어요.축구팀에 보내주세요"철없는 아들의 부탁에 어머니는 당황했다.
자신들의 형편으로는 비싼 축구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 한 것이기에.
그렇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무시할 수 없었고
나와 함께 이곳저곳 팀을 알아봐 주셨다.
겨우 저렴한 가격에 팀에 들어 올 수 있었던 나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패스 한번 받지 못하고
조명이 꺼지고 모두가 돌아간 뒤에는 혼자 남아 축구공을 닦아야 했다.
낡은 축구화를 수선하며 축구를 하던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난 어릴 적부터 정상인 보다 두 배는 빠르게 심장이 뛰는 질병이 있었는데
이 것 때문에 앞으로 운동선수를 할 수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다행이 수술을 하고 재활치료를 하면 정상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호전 될 수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하였다.
값비싼 수술비를 지불 할 수 없었다.
나의 소식을 들은 아버지와 형은 나의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취직을 하였고
마침내 일 년 후 온 가족이 모은 돈으로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술은 성공적 이였다.
재활을 마친 후 나는 더욱 더 훈련에 강도를 높였다.
비록 동료들에게 패스를 받지 못 하면 어떤가.
나는 행복했다.시간이 흘러 난 꿈에 그리던 그라운드에 데뷔하였다.
수많은 관중, 서포터즈, 스포츠 기자들,그리고 유명 축구팀 스카우터들.
내가 바라고 바랐던 축구장.
난 이 무대에서 죽을 각오로 뛰고 또 뛰었다.
"심장이 터져도 좋다."그렇게 나의 데뷔전이 끝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자신은 다른 리그 축구팀 감독이라고 한다.
그는 나를 이적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전율이었다.
그 곳은 세계 최고의 구단 중 하나인"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건 것은 최고의 축구 감독이라 평가 받는 퍼거슨 감독이었다.
전화가 끝난 후 나는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눈물이 나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흐느끼며 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더 이상 청소부 일을 하지 않으셔도 되요"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수화기를 잡고 울고 있으셨다.
구멍 난 축구화에 외톨이, 심장병을 가진 소년이었던 나는
그렇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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