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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등원하는 날

by 머니위너 2013. 7. 17.

36m+

 

 

뽀롱뽀롱 뽀로로~~~

 

오늘은 나 유치원에 가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줌마가 입만 빼놓고 온몸에 뽀뽀를 퍼붓는다.

 

무슨 일일까?

 

아무튼 기분이 좋다.

 

어제 봤던 선생님은 이쁘다.

 

사실 엄마가 이쁘다고 생각하지만,

 

선생님께 엄마보다 이쁘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이 좋아하셨다.

 

 

신발장에 못보던 신들이 진열되어있길래 (사실 모두 물려받은 신발),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모두 시은이 신발이란다.

 

신난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검정색 약물도 세모금이나 마셨다.

 

엄마랑 아줌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약을 잘먹는 아이라고 하셨다.

 

약은 조금 쓰지만 그래도 먹을만하다.

 

시은인 의젓한 어린이다.

 

 

아침은 유치원에서 혼자 먹어야한단다.

 

.

 

난 자신있게 선생님께서 조금 도와주실거라고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는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면 반드시 예의 바르게 선생님께 부탁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응가하는 일과 밥먹는 일이 가장 걱정이라고 하시는데,

 

사실 모르겠다.

 

내가 잘 없을거라고 말하니 엄마가 슬퍼하셔서,

 

그냥 있을거라고 말씀드렸다.

 

엄마 이마에 주름 잡히는 것이 제일 싫다.

 

 

유치원에 가는길은 바닥이 물로 젖어있었다 (전날 비옴).

 

엄마는 장화도 신지 않은채 물을 밟아버려서 발바닥이 젖어버렸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안된다고 얘기해줬다.

 

엄마도 참.

 

 

유치원 앞에 가니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모두 나랑 똑같은 옷을 입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나는 문이 왜이렇게 안열리냐고 조금 신경질을 냈는데,

 

조금있다가 어떤 할아버지가 오셔서 문을 열어주셨다.

 

 

아줌마는 유치원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밖에서 나를 꼬옥 안아주길래 아줌마 볼에 진하게 뽀뽀를 주었다 .

 

그리고 신나게 유치원 정문으로 들어섰다.

 

엄마는 조금은 슬픈 표정으로 아줌마를 향해 손을 흔드셨다.

 

 

교실로 올라가는 길에는 계단이 있다.

 

계단 오르기를 잘한다.

 

잘됬다, 이제 매일매일 계단을 오를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계단 오를때 조심하라고 한참을 말씀하셨는데,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엄마 목소리는 금새 들리지 않게되었다.

 

 

나는 사과반이다.

 

사과반 교실앞으로 가니 내가 좋아하는 장선생님이 서있었다.

 

금새 기분이 좋아져서 선생님께 인사를 했다.

 

선생님은 순식간에 엄마와 빠빠이 해야지 하며 내게 말을 건네고는,

 

교실 안쪽으로 손을 잡고 걸어들어가려했다.

 

문득 엄마 아빠쪽을 바라보았는데,

 

많은 사람들 틈에서 점차 모습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곧 친구들이 있는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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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밤잠을 설친것 이상으로,

 

아이도 은근 마음이 설레였나보다.

 

깨우지도 않았는데 평소때보다 30분이나 일찍 눈을 떴다.

 

지난 이틀간 유치원에 들락거리면서 선생님께 얼굴을 익혀서일까,

 

유치원의 넓은 운동장에 매료되서일까,

 

아이는 유치원에 가는것이 너무나 좋은가보다.

 

연신 히죽히죽 행복한 모습이다.

 

 

오래전부터 유치원에 가야하는 일들에 대해 얘기를 해두어서인지,

 

하나하나 물어보니,

 

유치원에는 혼자 가야하고,

 

혼자서 밥먹고 응가하고 잠자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한다는,

 

세부사항들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다.

 

다행이다.

 

시은이는 이미 이해하고 받아들인 상태의 일들에 대해선,

 

고집을 부리는 일들이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대신 언제나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나같다.ㅎㅎ

 

 

집에서 유치원까지는 고작 5 거리,

 

첫날이니 아줌마와 아빠 그리고 엄마 모두 함께 시은이를 유치원까지 데려준다.

 

가는길에 우리 시은이 잔소리가 보통이 아니다.

 

엄마, 길조심해요,

 

엄마, 거기 물있잖아, 장화 안신었으니까 밟으면 안되.

 

엄마, 엄마, 엄마

 

걷는 내내 마음이 쿵쿵 뛴다.

 

아이를 처음 유치원에 등원시키는 기분이,

 

바로 이런거구나

 

 

유치원 앞에 도착해 시은이는 아줌마와 아쉬운 이별을 하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입장~

 

오늘은 특별히 교실까지 엄마아빠 손잡고 들어갈 있다.

 

 

2 사과반 교실,

 

시은이의 이름이 적혀있는 벽걸이에 시은이 가방을 걸고,

 

가방안엔 시은이의 이름을 정성스레 수놓은 내의와 잠옷 여벌옷과 슬리퍼가 들어있다.

 

아직 감기가 떨어져서 휴지도 챙겨 넣었다.

 

스스로 코를 닦거나 줄줄 흘러버릴지도 모를 콧물을 생각하니,

 

문득 휴지를 챙겨넣는 마음이 속상했다.

 

가방을 걸고 곁을 돌아보니 시은이 담임 선생님이 계시다.

 

이미 얼굴을 익혀둔터라 선생님은 다정하게 시은이를 부르시며 인사한다.

 

이제 작별의 시간이다.

 

주변은 아이들과 학부모들로 몹시 분빈다.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이런 녀석.

 

역시나 쿨하다.

 

직장맘이라 엄마랑 헤어지는 것에 너무 익숙한지,

 

아이는 기꺼이 엄마 안녕이라 말하며 선생님 손에 이끌려 유치원 교실로 들어간다.

 

마음이 울컥할 1초의 여지도 내주지 않았다.

 

녀석..

 

 

아이를 보내놓고 돌아서는데,

 

아이 아빠와 나는 말로는 설명해 없는 기분이다.

 

아이가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의젓하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묘하게 섭섭한 마음도 들고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하고,

 

마치 뜨거운 마음이 냉장고에 갖혀버린 느낌같기도 하다.

 

 

회사에 돌아오니 손에 잡히는 일이 없다.

 

퇴근시간이 몹시 기다려진다.

 

아쉽게도 앞으로 아이 픽업은 아빠의 몫이지만,

 

퇴근후 시은이와 함께 보낼 시간들이 더욱더 소중해질것만 같다.

 

언젠가 아이도 친구가 좋고 선생님이 최고인 시간을 경험하겠지만,

 

엄마는 그때가서 조금더 자유로와지려고한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자유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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