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아줌마는 늘 시은이가 특별하다고 말한다.
솔직히 참 설레이는 말이다.
하지만 난 고개를 설레설레 쑥스러워해본다.
특별한 시은,
아줌마는 시은이가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아 다행이다, 가장 쓸만한 재주를 가졌나보다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참 좋다.
우울하게도 얼마전부터 내가 시은이에게 시은이 어디가 예뻐 라고 물어보면,
시은이는 마음이 예뻐 라고 대답하는 것을 망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르쳐줬던 내가 예민할걸까.
게다가 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아이를 보며 '이쁜이'라고 말하는 것을 절대로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쁘다는 것에 대한 보다 괜찮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다.
때론 말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매일 오전 오후 아줌마가 시은이를 동네 놀이터에 데리고 가 놀 때면,
이웃 사람들은 시은이를 보며 예쁘다고 한마디씩 칭찬해준다.
요즘 사람들은 확실히 '칭찬'을 남용한다, 사실 이쁘다는 칭찬보다는 이뻐질 것이라는 격려가 더 나은것을.
실제로 길을 가다가 꽤 여러번 뒤돌아보며 이쁜아이다 라고 하는 말을 나는 들은적이 있다.
내심 기분은 좋았으나 그닥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아니라 나는 대수롭지 않은듯 애써 외면한다.
덕분에 아이는 벌써부터 예쁜것을 선호하고 심지어는 예쁜것에 긍정적인 싸인을 보내기 시작했다.
틀어진다, 마음이 불편하다.
저녁에 퇴근하고 아줌마와 이 화제로 대화를 이끈다.
아줌마는 생각에 느낌만 있을 뿐 이름이 없을 때가 많다.
사실 잘 하고 있는데 바로 그 방향인데,
내가 어떤 이론인 것 마냥 이끌어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려하면 오히려 잘 이해하지 못해한다.
드문 성향의 사람이긴 하다.
아줌마가 얼마전에 말한 굵은다리에 대한 적합한 해설처럼,
난 단지 아이에게 예쁘다는 것이 뚱뚱하거나 날씬하거나 코가 크거나 다리가 길거나 정도쯤의,
'다름'일 뿐이라고 인식시키고 싶을 뿐인것을.
아줌마는 끝까지 이쁘다고 하는것이 왜 나쁜것이냐고 되물으며 갸우뚱 한다.
결국 난 아줌마에게 보다 간단히 설명해주기로 한다.
이쁘다고 사람들이 말하거나 말거나는 맘에두지 마세요.
그냥 그것을 반복하거나 강조하지만 말아줘요.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사실 아줌마는 이미 그렇게 해왔고 더 잘 할 수 있어요.
라고.
나는 아이가 이쁜것이 옳고 이쁜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게되지 않길 바란다.
반대로 못생기면 틀리고 못생긴 것은 최악이라고 여기지 않길 바랄뿐인데,
생각을 펼쳐놓으니 이리도 까탈스럽구나.
엄마는 오늘도 이렇게 시은이에게 특별한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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