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시은이가 말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도우미 아줌마에게 심하게 집착하던 아이를 떼놓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지금이야 시은이에게는 엄마가 최고지만,
아줌마에게 가겠다고 울고불고 떼썼던 한때도 있었다.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엄마 품에 안겨 아줌마에게 가겠다며 울어대던 시은이.
아...
지금 생각해도 난 눈물이 쏟아진다.
시은이 한살 좀 넘었던 때였겠다.
그때 한참 아줌마에게 시은이가 집착을 하기 시작했다.
아줌마는 아이를 돌봐야하는 의무도 있었지만 집안일을 해야하기도 했다.
주방에 들어가서 저녁을 해야하는 아줌마를 붙들고 떨어지지 않겠다고 목청껏 울어대던 시은이,
퇴근후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서 시은이와 놀아줄 생각해 가슴이 부풀어 있었던 나,
난 정말이지 우는 시은이를 아줌마에게서 떼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당시 난감했음을 알지만 아줌마에게나 남편에게나 나는 조금은 모진 엄마로 비춰졌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줌마를 주방으로 들어가게하고 (우는 아이를 두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듯했지만),
시은이를 데리고 (끌고선) 방으로 들어가 시은이와 대화를 시도했다.
거의 경기를 일으킬것 같은 수준까지 간 적도 있었다.
엄마가 하는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며 아줌마를 찾았다.
나는..
정말로 가슴이 아팠었다.
한번은 안되겠다 싶어 우는 아이를 모질게 방에 가둔적이 있었다. (1분도 채 안됬지만)
아이는 안에서 아줌마를 외치다가 외치다가 결국 엄마를 부르며 나가게해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문밖에서 시은이에게 울음을 멈추고 엄마말을 들어주면 나오게 해 주겠다고 했다.
그 어린 아이가 무엇을 알겠나 해 반신반의했지만 시은이는 다행히 울음을 멈추고 내게도 기회를 주었다.
내 마음을 알아주길 간절히 바라며 그리고 또 터질것같은 눈물을 삼키며,
난 아이에게 대화를 시도했었다. (임신때 접한 아이를 어른처럼 대하라-존중하라-는 육아서의 이론이 도움이 많이됬다)
엄마: 시은아, 울지말고 엄마말을 들어봐.
아줌마는 지금 주방에서 저녁을 해야하기때문에 시은이와 놀아줄 수가 없어.
그리고 지금부터 엄마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시은: (아직도 울먹이며, 사실은 두번째에 비로소 성공했다, 그 모진일을 나는 두번이나 했다) ...
엄마: 엄마랑 아빠는 시은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쭈욱 함께했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하지만 아줌마는 언제든 시은이를 떠날거야.
그건 엄마와 아빠가 시은이의 가족이고, 아줌마는 시은이의 친구이기 때문이야. (친구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말 알겠어, 이쁜이?
그 쯔음에도 난 시은이를 이쁜이라고 불렀고, 우연일지는 몰라도 내가 이쁜이라고 부를때마다 시은이의 맘이 더 너그러워지는 것을 느꼈었다.
시은이는 엄마의 말을 알아들었을까?
고개를 끄덕이더니 확인이라도 하듯 한마디 한다.
시은: 엄마는 가족, 아줌마는 친구.
고마운 시은이 울음을 완전히 멈췄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기고 한동안은 종종 그 일을 잊은듯 시은이는 또다시 떼를 쓰곤 했지만,
다급해하지 않고 "엄마는 가족, 아줌마는 누구?" 라고 내가 상기시켜주면 시은이는 곧 평정을 찾았다.
다행이였다 내가 더이상 모질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시은이는 내가 산후휴가를 마치고 출근하기 시작한 4개월부터 낮에는 아줌마와 함께 지내고,
저녁 퇴근 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엄마 아빠와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밤이되면 또다시 아줌마와 잠자리에 든다. (입주 아줌마)
나의 개인 사정과 소신에 의한 결정이였고,
다시 선택해야한다 해도 난 같은 결정을 할 것이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던 지난 2년동안 나는 정말 수많은 질문을 받았었다.
아니 사실은 질문보다 상처에 가까운 적이 많았다.
"아니, 어떻게 아이를 혼자 아줌마에게 맡겨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밤엔 왜 엄마가 데리고 자지 않아요, 아이가 얼마나 엄마를 원망하겠어요!"
"나같으면 일을 그만두겠어요, 왜 아이를 그렇게 내버려두죠?"
"아줌마가 아이에게 잘 할 것이라고 어쩜 그렇게 확신하죠?"
사실 돌려서하는 더 강도쎈 말들도 많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맘고생이라 생략한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시은이는 지금까지 아주 잘 해내고 있다.
엄마 아빠를 많이 생각해주고 웃음이 많으며 누구에게나 따뜻한 아이라도 믿는다.
얼마전 나는 남편과 지난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 아이를 따뜻하게 하지만 독립적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난 이렇게 생각해.
주어진 시간안에 아이에게 최고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나머지는 아이에게 맡기는거야."
어쩌면 이 말이 나의 선택에 대한 면죄부 쯔음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잘 알고있다.
앞으로 그 길고 긴 인생의 터널속에서,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사실 그닥 많지 않다는 것을.
아이에겐 우리가 선택해 줄 수 없는 더 많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부모로써 나는 단지 한가지를 정말 잘 해내고싶다.
바로 아이를 많이 사랑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온전히 전달하는 일이다.
그것은 결코 시간에 구여받지 않으며 장기적이고 꾸준한 것이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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