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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현실적인 이야기

by 머니위너 2013. 7. 17.

짧지만 굵은 메세지를 담은 편안한 글이 좋은데 오늘은 주저리주저리 길게도 써봤다. 한번은 정리해 볼 만한 생각이였기에.   

 

1. 흔들려도 좋다 

 

 

나는 세상의 모든 엄마가 자녀를 키우는데 최선이고 마치 아이가 성장기에 사춘기를 거치듯 엄마 역시 심하게 흔들리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흔들리는 과정이야말로 끌려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아닐까. 수많은 육아 전문가 내지는 준전문가들의 '이렇게 하지 말라'는 훈계에 우리는 뜨끔해하며 반성하지만 어떻게 그들이 '이렇게 하지 말라'라는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한번쯤 생각해 볼 만 하지 않은지그것은 그들 역시 '엄마'라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똑같이 흔들리고 반성하고 깍이고 내려놓고를 반복하지만 그래도 구태여 다른점이라면 마침내 소신을 지켜낸 점(소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용기가 필요하다) '마침' 아이가 잘 자라주었다는 아이의 몫도 반은 있는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어찌보면 그 흔들리는 과정마저도 우리에겐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 너무 안이하지도 그렇다고 아파하지도 말자.

 

2. 흔들리는 방법

 

오늘은 지난 시간 흔들렸던 나를 고백해볼까 한다. 시은이가 유치원 중반 (한국나이 네돌에서 다섯돌 사이)에 다니고부터였을까 세상적인 잡음들이 나를 흔들어놓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는 것 외에 한 두가지씩 무엇인가 배우기 시작했고 엄마들은 마주칠 때마다 서로를 탐색했다. 한자(중국어)와 숫자, 피아노와 무용, 영어와 수영 그밖에도 요즘 세상은 다양한 배울것들을 만들어내 어른들 지갑을 열게하는데 정말 도사였다. 처음 반년동안 나는 듣지않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방식으로 이에 대항했는데 아이가 자랄수록 그것만이 대책은 아닌듯했다. 문제는 시은이였다. 한동안 친구들이 배운다는 것은 다 배우고싶어했다. 어쩌면 아이는 무엇을 배운다는 것이 친구들과 함께하는 놀이 정도라고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엄마는 이럴때 흔들릴것이다. , 물론 어떤 엄마들은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당장 뒤쳐지지 않기 위해 이런 저런 최대한 많은 것을 아이에게 쥐어주려고 할 지 모르지만 난 이제는 적어도 반 이상의 엄마들이 최소한 흔들림을 경험하고 충분히 고민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 더이상 획일적이지 않은 것처럼 누적된 교육 문제에 경각심을 갖고 극복하려는 엄마들도 이제 적지 않음을 나는 믿고싶다. 그리고 그 중 흔들리다 흔들리는 쪽으로 쓰러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또 반의 반 정도는 소신을 지켜내지 않을까. 여기서 소신을 지켜낸다는 의미는 결코 세상을 등지거나 눈을 감아버린다는 말이 아닌 적어도 현실과의 타협에서 합당한 이유 정도를 말해낼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 밉게 말하면 자기 합리화가 될 수도 있겠고. 아무튼 그렇게 반년이 지난 후 난 시은이와 우선 한가지만 배워보자고 협상했고 첫번째로 배우게 된 것은 피아노였다. 사실 피아노라고 해봐야 유치원에서 수업시간 내에 가르치는 일종의 취미반 활동이였는데 아이의 흥미정도를 판단하는데 딱 좋을것이라고 판단해서였다. 모르겠다 나는 전문가도 아니라 예체능은 어떻게 처음 시작해야할지. 다만 나는 아이 일은 가급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고 결정한 일에는 책임을 다하길 바랄 뿐이였다. 그리하여 정해준 시간 역시 반년이였다. 반년 안에는 그만두기 없기. 그때가 3월이였으니 이제 4개월째, 다행히 녀석은 피아노 배우는걸 좋아라하고 집에선 아이가 원할때만 치도록 격려해줬다. 워낙 놀 시간이 모자른지라 좀처럼 피아노 연습할 시간이 나지않는 관계로다가. 그리고 얼마전부터는 영어학원에 다니겠다하는 아이에게 엄마가 무슨책 읽어줄까? 할때 영어, 중국어, 한국어 책 중 영어 이야기책을 제일 먼저 읽겠다고 하면 그때 학원에 보내주겠다고 한 후로 녀석은 더이상 영어학원을 언급하지 않는다.

 

3. 선행학습의 부정적인 면  

 

모르겠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아이가 하겠다는데도 구태여 그럴 필요 있겠는지 물어오는 사람이 있을지는. 여기서 잠깐 내 어릴적 이야기를 할까한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때 중학교 내용을 선행학습 한 경험이 있다. 덕분에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가서 수학과 영어는 늘 90점대였고 특히 영어는 꽤 자신있었다. 그렇게 3년동안 나는 그 자신감이 자만심이란 것을 모른채 지냈고 급기야 고등학교에 가서부터는 영수 성적이 급속도로 하락을 하기 시작했다. 다 배운거라고 수업시간에 소홀히 했던 결과였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렇진 않지만 내가 봐온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행학습의 피해자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대학 입학까지는 무사했던 아이들도 사회에 나와서는 패배감을 느끼기 일수였다. 나는 그래서 선행학습을 선호하지 않는다. 예습과 복습중에 복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복습중에서도 수업을 들은 직후의 복습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습은 목차정도 이해하고 호기심을 유도하거나 의문을 갖는 정도의 선까지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너무 앞서가면 쉽게 말하면 재미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은 단계별로 학습해야하고 그 시기는 아이 각각의 발달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고 전문가들은 목소리높여 이야기하는거다. 맞다고 고개 끄덕여도 결국은 무시당하는 그 진리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난 아이에게 학습을 강요하지 못한다. 여느 엄마들처럼 환경을 만들어놓고 권해보는 것 까지는 가능해도 나는 아이가 나 때문에 흥미를 잃을까 기회를 잃을까 사실 두렵다. 그래서 권하는 것조차도 솔직히 매우 조심스럽다. 가까운 예로 시은이 같은반 친구 중 두 아이가 각각 영어와 무용학원에 등록해놓고는 중도에 포기했다. 그 과정은 꽤 처절했다. 엄마, 제발 영어학원 그만 다니게 해 주세요...라고.

 

4. 댁의 아이는 학습할 준비가 되었나요

 

시은이네 집에는 한국의 여느집처럼 책이 꽤 많다. 엄마가 말하는거 좋아하고 동화책을 사랑해서 일찍부터 책 많이 읽어주고 이야기 많이 들려주며 키웠지만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 놀이는 솔직히 못해줬다그래서 아이는 어느정도 엄마 성향을 닮는가보다. 시은이는 장난감이나 인형도 거의 안가지고 논 편, 오로지 사람과 놀거나 (몸놀이, 음악놀이, 이야기) 이야기를 들으며 컸다. 그래서 때때로 그림 잘 그리는 아이들을 보면 아쉬움이 없는것도 아니지만 내가 일부러 놀아줬다면 과연 시은이도 그것을 즐겼을까 는 여전히 미지수다. 마찬가지로 엄마의 속내 희망과는 달리 아이는 학습에 '아직'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번 솔직히 말하면 난 아이가 스스로 잘해주길 참 바랬던것 같다. 엄마 아빠가 세상속에서 덜 흔들리고 덜 싸워도 되도록 우연히 아이가 그래줬으면 바랬다그래서 일부러 한글 학습지를 시키거나 교육용 DVD를 꾸준히 보여준 적은 없지만 한글 관련 책들도 구비해놨고 눈치봐서 기회봐서 가르쳐도 봤지만 녀석이 너무나 당당하게 '안할거예요'라고 말하는 통해 접근도 못하는 중이다비록 단지 시기의 차이일지라도 이와는 반대로 부모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데도 문자에 호기심을 갖고 물어오는 아이들도 종종 있고 자기 의사와는 별개로 순한아이의 경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을 오직 기쁨으로 여기며 학습에 임하는 아이들도 봐왔다. 그 중 내 아이는 아직관심이 없는 상태, , 난 내 아이도 '이 글자가 뭐예요?'라고 눈을 반짝이며 물어오는 날이 올 것이라 믿었는데 아직인거다. 물론 알고있다. 행복은 성적순도 아니고 나 역시 학교때 성적은 별루였으며 오히려 내 경우는 늦게 피는 꽃에 해당하기에 나는 그 기다림이 뭔지 잘 알고있다. 그런데 말이다. 호히려 내가 아닌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그 기다림이란 상상외의 엄청난 인내와 용기를 필요로하는거다. 공감할 수 있을까.  

 

5. 고민해야하는 이유

 

이쯤에서 생기는 의문, 왜 그리 고민해야하는지. 사교육이 싫으면 시키지 말고 좋아하는 책 많이 읽어주면서 자연과 어울어져 밝고 긍정적이게 아이를 키우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누군가 아는지 모르는 지 질문을 해 올 지도 모르겠다. 대답은 간단하다. 나는 이 사회에 속해있고 전반의 교육 환경은 이미 정해져있다. 그리고 그 환경은 내게 썩 아름다와보이지 않기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 나는 발버둥쳐야한다. 결국 나는 아이가 언제 어떻게 어떤일(사람)에 의하여 어떤 동기를 가지고 어떤 공부를 하게 될 지는 예측할 수 없겠지만 아이가 세상을 어찌 바라보고 어떻게 사람됨을 갖추는지 또 어려움에는 어떤 자세로 극복할 것인지는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길잡이는 되어줄 수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아이가 처음으로 발을 내딛은 유치원이라는 사회는 겨우 다섯돌인 아이에게 이미 아웃풋(숙제 내지는 글자공부) 을 요구하고 있으니 엄마가 되어 가만히 넋놓고 있을 수는 없다. 스트레스를 제거하지는 못하더라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아이와 함께 극복해야하지 않을까. 모 육아서에서 가장 좋은 부모란 아이에 대한 관심’ (여기서 말하는 관심은 아이와의 소통으로 요약)기대치둘 다가 높은 경우라고 하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방목을 위장한 무관심부모의 형태와는 혼동되지 않기를 다시 한번 강조해본다.  

 

6.엄마 실수, 그 구체적인 예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얼마전 내가 아이에게 실수를 했을때 그날은 내가 기대에 부풀어 아이와의 소통을 소홀히했음을 인정한다. 아이가 갑자기 무지개 물고기 책을 들고서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난 이때인가 싶어서 녀석을 격려하며 곁에서 지켜보다가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글자를 가르키며 가만히 질문을 해 보았고 아이가 제법 읽어내기에 점점 높은 요구를 하며 아이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요녀석 다섯번도 더 읽어낸 무지개 물고기의 자를 따로 떼어내니 못 읽는것이 아닌가.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통문자 학습의 단점인가. 이녀석 또 대강대강이구나 난 속이 답답하고 부글부글 끓더니 급기야는 폭발하고 말았다. 아이는 글을 읽는것이 아니라 내용을 외운것이였다. 순간 나는 내 실수를 눈치채고 만회하기 위해 서둘러 책을 덥고선 아이에게 글을 읽고싶지 않으면 읽기를 그만두자고 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내 표정에서 실망을 읽어낸 아이는, ‘잘하고 싶지만, 결코 하고싶지 않았던아이는 급기야는 눈물을 터트린것이다.   

 

7. 아웃풋에 관하여 그 구체적인 예

 

이어서. 녀석은 엉엉 울면서 말했다. “엄마 나는 XX처럼 글자를 많이 알지 못해요, 나는 똑똑하지 않은가봐요. 그런데 나도 XX처럼 글자 많이 알고 싶지만 그건 칭찬을 받고싶어서예요. 사실 나는 노는게 더 좋단말이예요

 

흐느끼는 아이의 호소를 듣고 어찌나 부끄럽고 미안하던지. 글자를 많이 아는 XX를 두고 선생님은 또 얼마나 많이 그 아이를 똑똑하다고 했으면 아이가 스스로를 똑똑하지 않다고 말했는지. 그래도 아이는 어찌나 솔직한지. 그런 아이를 나는 또 얼마나 궁지로 몰았는지. 아이가 속한 환경에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아이를 보호해야할지. 순간이지만 모든것이 분명해지는것 같았다.

 

시은엄마:

시은아, 엄마가 미안해. 시은이가 글자 공부 하고싶지 않은지 몰랐어. 그리고 시은아 XX이가 글자를 많이 아는건 그 아이가 그 글자를 배웠기때문이야. 시은이는 아직 배우지 않았고. 마치 시은이가 한국에 가봤는데 그 친구는 가보지 않은것과 같은거야. 그것은 똑똑한 것과는 관계가 없어. 그러니 어른들이 말하는 똑똑하다는 말에는 마음을 쓰지마. 그건 너는 배웠구나와 같은 말이야. 그리고 엄마도 시은이처럼 어렸을땐 노는게 훨씬 더 좋았어. 아이들은 대부분 그래. 글자는 나중에 학교에 가서 혹은 네가 배우고 싶을 때 배우면 되는거야. 그럼 재밌게 배울 수 있을거야.

 

마음이 풀린 아이의 이마에 뽀뽀를 해 주고 방을 나온 후 나는 아이 아빠와 한참을 이야기했다. 아이의 몸과 마음이 안전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우리가 서로 함께 붙들어주자고. 어떻게 하면 되겠는지 중심은 섰으니 매 순간 흔들림에 크게 연연하지 말고 더 멀리 더 나중을 생각하자고. 궁극적인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놓치지 말자고. 건강하자고 행복하자고. 그리 다짐하고나니 잠시 든든해졌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순간들이 모여 영원이 되는것이라고 믿기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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