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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새로운 벌칙

by 머니위너 2013. 7. 17.

요즘 시은이는 확실히 미운나이다. 하지 말라면 하고 하라고 하면 잔소리 한다고 안하는 나이. 나는 그런 나이가 중학교 사춘기에나 오는줄 알았는데 정말 유아 사춘기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물론 네 돌 아이는 세 돌 아이보다 세상을 더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어떻게 해야 사랑받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 대부분의 일상은 비교적 평온하고 타협적이긴 하다. 단, 일단 의견충돌이 생기면 마땅한 해결방법을 잘 모르는 하지만 결국 타협해야 함은 이미 인지하고 있는 그런 나이인것이다. 어린이와 아이 사이, 즉 이전처럼 '이건 내꺼야'라고 말할때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던 시절과는 다르다는 것. 아무튼 그래서 아이는 요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경험하고있다. 중학교 사춘기때와 비교한다면 추상적이거나 철학적인 고뇌가 아닌 자아적인 초기 감정의 격변기를 겪고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요즘 난 더이상 생각하는 의자에 시은이를 앉히지 않는다. 뭐랄까. 아이는 더이상 생각하는 의자에 앉는것이 고통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즉 반성을 유도하는 요소가 없다는 점. 물론 난 여전히 생각하는 의자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나중에도 종종 활용할 생각이지만 단지 최근 청개구리 시은이에게는 그닥 효과적이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을 하나 찾아냈는데 당분간은 요긴할 것 같다.

 

집에 나무토막(이라고 하기엔 좀 작다)으로 된 도미도가 있다. 손가락 두마디 높이에 세워두면 아슬아슬 할 정도로 얇은 두께의 작은 나무인형들이 한 A4지 반장 정도 되는 작은 상자 한 가득 담겨있는 도미노다. 그런데 이 도미노는 좀처럼 잘 꺼내 놀지 않았다. 왜냐하면 쏟아부은 도미노들을 정리해 넣는일이 꽤 번거롭고 짜증스럽기때문이다. (자꾸 넘어지는 관계로) 그리고 며칠전 시은이는 또 한번 고의적인 잘못을 저질렀고 (이맘때 아이들의 고의적인 잘못은 주로 본인들이 충분히 잘못했다고 인식하고 있는 잘못을 말한다. 예를들면 글씨를 쓰다가 잘 안써지니까 심술이 나서 색연필을 부러트렸다거나 등등) 잘못을 저지른 스스로가 몹시 못마땅했던 시은이는 더더욱 흥분하며 화를 냈다.(최근 부쩍 죄책감을 느끼고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면 더 엇나가곤 한다. 이럴때 아이는 '엄마, 안아주세요.''엄마가 용서해주세요' 혹은 '엄마 땡쳐주세요'라고 말하며 되돌리려하는 노력을 보인다) 아무튼 이번엔 정도가 좀 심해진다 싶더니 급기야는 물건을 던졌다. 난 최대한 진정해서 던진 물건을 주워달라고 말했지만 엄마의 화난 표정을 이미 읽은 시은이는 매우 고통스러워져서 더 망가졌다. 난 아이를 일단 안아주고선 진정하라고 했고 울음을 그친 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도미노를 꺼냈다. 그리고 그 가지런지 세워져있던 나무인형들을 바닥에 쏟아부었다. 시은이는 움찔하고 놀래더니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 시은이는 엄마 기분이 어떤것 같아?

시은: 화가났어.

엄마: 왜?

시은: 시은이가 잘못했거든.

엄마: 그래, 그런데 엄마는 시은이한테 소리를 지르고싶지도 않고 시은이 엉덩이를 때리고싶지도 않거든.

시은: ...

엄마: 그래서 너에게 다른 벌을 주려고 해. 이 도미노 안에 있는 나무인형들을 상자안에 도로 가지런히 세워놓아봐, 모두.

시은: 모두?

엄마: 응, 모두. 

 

나는 곧 문을 닫고 거실로 갔고 아이는 20여분간 낑낑대며 도미노안에 나무인형들을 가지런히 세워놓았다. 사실 중간중간 인형이 넘어질때마다 아이는 좀 짜증을 내는듯 했지만 그래도 완수했다. 솔직히 생각보다 수월하게 보였던 난 마지막으로 시은이에게 한마디 했다. 다음번에 시은이가 고의적인 잘못을 했을땐 도미도 정리 두번 하는거야. 알았지? 

 

이렇게 엄마의 잔머리도 느는구나. 내가 잘 하고 있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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