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말고 말하렴 인가.
느낌이 오는 동화책이였지만 사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내가 어릴적에는 이솝우화, 전래동화 좀 커서는 이웃집에 새로 들인 디즈니 시리즈 읽는게 고작이였는데,
요즘은 생활습관 동화같은 것도 참 많고 심지어는 수학, 과학 동화들도 쏟아져 나오더라.
또 그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한편 들지만,
예를들어 생활습관 동화나 인성교육 방면의 책은 그 내용이 책을 통해서가 아닌,
엄마와 아빠의 실생활을 통한 체험이라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울지말고 말하렴이란 책이 느낌이 옴에도 불구하고 사지 않은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제목만 보고도 알 것 같은 내용의 책 사기에 난 원래부터도 좀 신중하지만,
요즘처럼 일분 일초를 다퉈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시대에 살고있는 나로써는,
선택은 불가피한것이니 나는 이렇게 아주 많은 책의 제목에서 때론 얌체처럼 힌트만 얻어간다.
울지말고 말하기.
시은이는 두 돌이 되기전에 떼쓰기 1단계 시기를 거쳤는데,
(막연하지만 나는 그것이 단계별로 진행되는 것이라 믿으며 다 자란 어른도 결코 완전한 제외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포스트에도 쓴 적이 있지만 시은이의 두 돌 인생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시련은,
안아달라고 10분 가량 떼쓰며 땅바닥에서 뒹굴었던 지난 10월 어느날의 사건이였다.
시은이의 경우 그 일 이후 더이상 떼쓰기를 하지 않는다.
난 어쩌면 시은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그 일을 기억해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내게도 잊혀지지 않는 첫 기억이 그때즈음 이였던것 같으니 말이다.
성별이나 아이 성향의 차이에 따라 시기가 다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도 전에 의사전달을 할 줄 안다.
그리고 엄마는 최선을 다하여 아이의 뜻을 파악하고 그 욕구를 만족시켜준다.
이때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기본욕구에 충실하다는 것을 우린 알게되는데,
바로 그 욕구가 만족되지 못하거나 지체될 때에 불만이나 분노를 울음으로 표현해낸다.
하지만 우리는 가능하면 다음 단계인 말 배우기 전까지만 그것을 허용해야한다.
잘 생각해보면 떠오를까 어른들 중에도 놀랍지만 이런 형식으로 불만이나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이 있다.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혹은 말을 순조롭게 배우길 바란다면),
이때부터 부모는 아이에게 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이가 말을 해 내도록 유도하거나 격려하거나 기다려줘야한다.
아이가 아직 말을 못해요 라고 말하는 엄마들 조차도,
이맘때쯤 아이들이 아주 많은 것들을 알아듣고 이행한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것이다.
알아듣는 것은 말해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시은이가 처음 무엇인가를 요구하기 시작했을때,
나는 시은이에게 두손을 내밀며 ...주세요 라고 요구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일종의 놀이였고 신호였다.
여담이지만 재미있었던 한가지는 시은이는 한동안 '주세요'라는 본연의 뜻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보여 주세요' '안아 주세요' 라는 말을 할때마다 두손을 모아 내밀곤 했다는 것. ^^
그렇게 두손을 내밀던 아이가 어느순간 '주세요'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아이가 무엇인가 갖고 싶을때엔 꼭 그렇게 얘기하도록 기다려줬다.
(경어가 발달하지 않은 중국어를 구사할 때에는 '请,可不可以,好不好' 등을 사용해 표현을 완화시켰다)
하지만 시은이는 때때로 너무나도 급한 나머지,
아이들은 (특히나 성격 급한 성향의 아이는) 무엇인가 하고 싶을때 갖고 싶을때 바로 하지 못하면 제 성에 화를낸다.
듣기로는 경련을 일으키는 아이도 있다더라.
시은이는 경련까지는 아니지만 성격이 급한편인지라 한동안 이를 악물고 몸을 부르르 떨었었다.
심각한 상황이 아니어서 그런지 보고있으면 어찌나 우습던지..ㅎㅎ
그러다가 울어버릴 때도 있었고 나를 때려버릴 때도 있었다.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는.
물론 긴 기간 동안이 아니였다.
그럴때마다 난 일단 침착하고 아이가 내 눈을 보게했고 가급적이면 낮은톤으로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 시은아, 하고싶은 말이 뭐니/ 갖고싶은 것이 뭐니/ 무엇을 원하는거니/ 잠깐만 기다려 볼래?
'너 (도대체) 왜 그러니' 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피하려 애써야했다. (솔직히 그렇게 말하고 싶을때가 많았던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이 잘 통하지 않을땐 룰룰룰루 랄랄랄라 일단 시은이의 정신을 분산시키기도 했었고,
더 심할땐 (안전하다는 전제하에) 아이를 울도록 내버려두기도 했다.
그렇게 좀 시간이 흐르자 아이는 점차 룰을 알아갔다.
원하는 것이 있을때는 반드시 표현해내야 (말 해내야) 하고,
그렇게 해도 때로는 얻을 수 없거나 또 때로는 좀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아이가 알아들으리라 믿고 그때그때 나는 열심히 설명을 해 주었다.
늘 강조하지만 아이와의 소통에 있어서는 아이를 존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그 방법의 하나가 바로 아이가 이해할 것(잘 해낼것) 이라고 믿어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포스트에서 쓸 예정이지만 물론 믿음이 지나치거나 혹은 그것이 기대로 반영될 때에는,
역시 아이에게 좋지않은 영향을 미칠것이라고 나는 생각을 한다.
아 그래 울지않고 말하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정리하면 그렇다.
모든 아이에게는 울지않고 말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적합한 시기가 있는데,
그 시기를 판단하고 아이가 스스로 표현하도록 돕는것이 부모의 역할일 것이겠다.
협박하거나 윽박지르는 형식으로 아이의 말을 유도하지 말고 (특히 남자들),
그렇다고 말해내기도 전에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준다고 모든것을 다 손에 쥐어주는 것도 옳지 않음을 기억하자.
원하는 것을 말해내도록 돕고 말해낸 것에 대해서 합당한 이유와 결과를 설명해주고,
아이가 어렵게 표현해 낸 욕구에 대해 가급적이면 많은것을 허용해주되 위험하거나 옳지 않은것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해준다.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고 부족하면 나중에 보충해야겠다.
헛 또 무슨 괘변이냐 하겠지만,
상황에 따라서 그래도 아이는 아이답게 투정부리고 울도록 내버려둬야한다는 생각도 나는 한다.
마냥 그 마음을 이해해줘야 할 때도 있고 그럴땐 부모도 그 마음을 표현해줘야한다.
어른의 위로받고 싶은 마음과도 같은것이다.
어떤것은 이유가 없거나 표현해내지 못 할 수도 있고,
아이가 커갈수록 울음에 더 많은 뜻이 내포될테니까 말이다.
좀 복잡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경우수가 아닐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