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은, 28개월+>
어제밤 시은이 잠들기 전 우유를 마실때였다.
180cc가 담긴 우유잔을 스스로 들고선 마지막 한방울까지 마시는 과정인데,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은 알겠지만 쉽지않은 일이다.
때론 컵을 바꿔주고 때론 빨대를 꼽아주고,
또 때론 뽀로로를 보여주거나 책을 읽어주며 성공적으로 우유 마시기를 마치곤 했다.
그리고 최근엔 애꿎은 ‘포비(뽀로로 친구)’를 악역으로 세웠는데,
시은이가 우유를 몇모금 마시다 달아나면 우린 (아줌마, 엄마 혹은 아빠),
포비에게 우유를 줄꺼라고 우린 포비가 좋다며 시은이를 자극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 방법을 난 상당히 아끼는 편인데,
(어떤 목적이든 무엇인가를 뺏고 빼앗기는것을 가르치는 것은 좋지않다)
이 연령때의 아이에겐 워낙 잘드는 방법이라 최후의 수단쯤으로 사용한다.
더 커버리면 믿지도 않을테고.
아, 생각해보니 비록 시은이가 태어나고 단 두 차례뿐이였지만 극단의 처방인 ‘매’도 있구나.
아무튼 내가 포비를 품에 안고 강도쎄게 시은이를 자극하고,
시은이가 막 포비에게서 우유컵을 낚아채었을때였다.
이런, 우유잔이 쏟아져버렸다.
여기서 잠깐,
아이를 키우면서 물이나 우유를 쏟는 일은,
빈도수 잦은 너무나 사소한 사고라고 말하는 엄마들이 있겠지만,
조심성 많은 성향의 시은이에게 있어서는 정말 기억에도 없던 드문 일이였다.
마찬가지로 엄마인 나역시 시은이가 우유를 쏟아버린 모습은 거의 처음이였다.
순간,
난 다행히 멍해지는 바람에 짧은 몇초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다행이라 말한것는 성급히 화를 내지 않았던 내 행동에 대한 안도의 한숨쯤된다)
또 한가지 다행인 점은,
아줌마 역시 묵묵히 걸레를 들고와 우유를 닦을뿐,
어떠한 당황스럽거나 귀찮다는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유가 좀 많이 쏟아졌다)
난 순간 아빠가 그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하며 나는 쓸데없는 가설을 세워보기도 하였다.
다시 이야기의 원점으로 돌아와,
우유를 쏟은 그 짧고 멍한 몇초가 지나자,
시은이는 그만 왕…하고 울음을 터트렸는데,
(워낙 잘 울지않는 아이라 또한번 멍)
내게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그순간,
비로소 난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론상으로는 아이의 실수를 이해해주는 것이 상당히 쉽지만,
실제에선 막상 판단이 흐려질때가 많기때문에,
나는 일단 아이의 실수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하느라 시은이를 울려버린 것이다.
엄마: 시은아, 괜찮아, 우리 시은이 실수한거잖아.
시은: … (엄마에게 안기며)
엄마: 시은이는 우유를 잘 마시지 않았지만 우유를 엎을 생각은 없었잖아.
그러니 울지마, 실수는 누구나 하는거야. (어쩌구 어쩌구)
난 솔직히 많이 놀랐다.
난 늘 아이가 실수를 하고 우는 순간은,
틀림없이 엄마가 나무랄때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아이는 그 순간 그 침묵의 순간에 그만 스스로 울음을 터트린것이다.
게다가 나는 그닥 아이를 꾸중해 본 경험이 없기때문에,
아이가 혼날것이라 겁먹었을 가능성조차 없으니 말이다.
난 잠자리에 들기전 한참을 생각했다.
아이가 더 많이 당황스러워했던 그 순간을,
스스로 실수한 것에 대해 이미 상처를 받았다고 눈물로 신호를 보낸,
아이의 그 순간을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어른들도 같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처럼 울지 않을뿐,
실수에 따른 결과와 책임이란 더없이 무거운 체벌앞에서,
어른들은 사실 더많이 힘들것이라는,
내겐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였다.
고마운, 시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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