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나는 엄마들이 (간혹 아빠들이) 육아.훈육 문제로 남편과 (아내와) 무수하게 다툴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 또 이 과정은 누구에게든 때론 치열하겠고 또 때론 결국 한쪽이 포기하는 선택을 하곤 하는데, 난 이 두가지 경우 모두 맞다고 생각한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내려놓을 부분은 내려놓을 것. 단 이때 차이는 절대 사람을 내려놓아선 안된다는 점. 아빠의 자리도 엄마의 자리도 반드시 광명정대하게 남겨놓아야한다.
아빠와 엄마 두 사람의 육아 생각이 완전히 일치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대상은 남편도 아내도 아닌 '감정은 어른보다 섬세하지만 행동은 결코 어른만큼 이성적일 수 없는' 아이들이라는 점. 솔직히 난 아이를 대하는 남편을 보고 때때로 내 남편이 저렇게 형편없었나 싶을때가 있었는데 대부분이 아빠가 아이를 본인과 동일선 상에 놓고 꼬치꼬치 캐물을때였다. 아니, 동일선 상에 놓는것까진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적어도 아이의 감정을 어른과 동일선 상에 놓고 이해해줬다면 어땠을까?
요 포스트에서 나는 일단 아빠(엄마) 유형을 크게 둘로 나눠봤다. (나는 모든 아빠 유형을 다룰 경험과 능력이 부족하다)
1. 너그럽기만 한 아빠(엄마)
2. 엄격하기만 한 아빠(엄마)
이 두 경우 모두 매우 극단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내게 한가지를 선택하라면 난 '너그럽기만 한 아빠'를 선택하고 싶다. 공교롭게도 시은이 아빠는 할아버지를 빼닮아 '엄격하기만 한 아빠'에 속했었고 그나마 지금은 너그럽거나 엄격하기만 한 사이를 극단적으로 오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런 경우 아이 아빠는 너그럽고 엄격해야할 적시를 캐치하지 못한다는 약점.
물론 쉽지 않은 일이고 해냈다면 칭송할 일이며 애쓰고있다면 더더욱 '스티커'받을 일이다! 사실 효과 여부를 막론하고 시은아빠는 '스티커'를 받아야 마땅함을 나는 잘 알고있지만 이럴때면 꼭 남편에 대한 나의 기대치가 커지곤 해 남편에게 미안하기만하다.
자 그럼 지금부터 쉽고 간략하게 그간 시은엄마의 좌충우돌 '아빠대책'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흠흠~ 참 미리 말해두겠는데 아빠 엄마의 역할은 어느집에서든 반대일 수 있다. 다만 나는 시은아빠를 포함해 내 관점에서 지극히 일반적인 경우를 대상으로 이 글을 쓴다. 그러니 이미 잘 하고 있는 아빠거나 아이아빠가 엄마보다 세심한 경우 글읽기를 이쯤에서 접어도 좋겠다.
일단 우린 맞벌이니 좋은점은 무엇이든 비교적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는 점. 반대로 나쁜점은 아무리 요구하고 도와줘도 산더미같은 집안일은 워킹맘에게있어 늘 끝내지 못한 숙제일 뿐이라는 점. 그래도 대부분 초반엔 희망과 기대로 충만해 남편을 얼르고 달래며 육아에 적극 참여시키지만 해내는 일보다는 해도 다시 손이 가는 일들만 쌓여간다. 그래 모든 엄마들처럼 나 역시 부단한 시행착오를 통해 이젠 뭐든 함께하고 해줘야한다 생각하기보다는 가급적이면 아빠가 좋아하진 않더라도 비교적 잘 해내는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편이다. 예: 둔감한 성격이라면,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보다는 몸으로 놀아주기, 세심함을 요하는 집안일 보다는 힘쓰는 일이나 바깥 심부름 등. 실제로 돌 쯔음 아이들에겐 세심한 엄마보다 둔감한 아빠가 놀아줄 때 덜 잡아주고 내버려둬서 그런지 아이는 걸음마가 더 빨리 늘더라.
돌보기 중심인 돌 전까지는 사실 여기까지 해내는 것 만으로도 꽤 잘하는 편이다. 아내도 이젠 제법 공평하단 생각이 들고 못하겠는 건 적당히 밀어내거나 미루는 꾀를 부린다. 하지만 아이가 두 돌 쯤 되면서부터 엄마는 아빠가 몸으로 놀아주는 것 말고도 언어적 스킬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이때부터 아이는 단계적으로 까칠하거나 어른스러움 사이를 오가며 엄마 아빠를 혼란에 빠트리는데 보통 엄마도 힘들 뿐더러 아빠라면 더더욱 버거움을 느낀다. 이는 아이가 여자아이, 게다가 민감한 여자아이일 경우 더한것 같다. 심지어 머리털나고 처음 데이트 할 때보다 아빠는 더 서툴고 아이는 더 까탈스럽다. 녀석은 해줘도 울고 안해줘도 울고 줘도 화내고 안줘도 화내고 툭하면 말 한마디에 삐치기 일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보통 남자는 상대가 불만을 토로하면 일단 공격적인 태세를 갖추거나 자기방어를 시작하는데 남편, 설마 했는데 딸아이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딸아이가 폭탄을 터트리는 순간 (엉뚱한 일로 트집을 잡는 순간) 아빠는 아빠의 권위를 앞세워 아이를 제압하고 강요하고 심지어는 언어로 그리고 몸으로 아이를 공격한다. 여기서 언어 방어는 일종의 비난, 몸으로 하는 공격은 엉덩이 팡팡~! 곧이어 아이는 아프지 않아도 우왕 하고 울음을 터트릴 것이고 아빠는 길어도 10분 뒤면 아이를 때린것에 대한 극심한 후회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때때로 아내는 달려들어와 아이를 품에 안고 남편을 저지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상황은 부부싸움으로까지 발전하게 되고 아빠는 '당신이 애 다 버려놨어!' 내지는 '난 몰라, 그럼 당신이 알아서 해' 라고 버럭 한마디하고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아이는 그때부터 아빠는 그런 사람 엄마는 이런 사람 이라고 우리에게 꼬리표를 달고 만다. 그리고 때론 어떤 부부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살겠고 또 어떤 부부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시달리게되겠지만 이것도 내 경험엔 주로 엄마의 몫이다. 동굴속으로 숨어버린 아빠는 뒤를 돌아보고 쉽게 화해를 구해오지 않는다. 더더구나 쪼만만한 아이에게 말이다.
그런데 이때 만약 아빠가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와 아이와 아이엄마에게 화해를 시도하면 어떨까.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좀 전에 일어난 일은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다. 감정이 회복되는 순간이다. 상처는 방치하는 것이 아닌 치료하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그래서 나는, 우리는 어떻게 잘 하고 있는가… 보다는 어떤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는가를 밝히자면.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은아빠는 천성/후천적으로 둔감하고 권위적인 아빠에 속하기 때문에 돌보기에서처럼 나는 일단 남편에게 ‘어려운 미션’을 맡기지 않는다. 아이가 투정부릴때 늦장부릴때를 통틀어 까칠하게 굴 때 우리집은 주로 내가 해결사다. 아빠는 주로 아이를 즐겁게 하는 일에만 집중한다. 입이 근질근질 잔소리하고 싶겠지만 그런건 그냥 엄마에게 미뤄두자. 즉 돌보기에서처럼 잘하고 즐길 수 있는 부분만 맡는거다. 물론 여기서 내가 말하는 영역은 주로 반복되는 생활습관 문제이다. 아무리 옳아도 말해봐야 결국 잔소리가 될 말이라면 둘보다는 한사람이 하는 편이 낫고 기술적으로 내지는 적어도 아빠보다는 이성적인 엄마에게 맡김이 낫다고 나는 판단한다.
그런데 때때로 엄마도 여러가지 변수로 (시댁 스트레스, 직장 스트레스, 과다한 집안일 스트레스, 남편의 이해부족으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 인해 좌절하거나 폭발하는 경우가 있겠는데 나는 이런 경우에도 남편에게 아이에게 너그럽기를 요구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빠가 아이의 감정만 수용해주되 아이의 잘못까지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점. 기술적으로 잘 못하겠으면 아예 ‘잘못’에 대한 언급을 하지말고 아이를 데리고 일단 문제의 장소 (엄마곁)에서 떠난다. 실제로 적지만 나도 가끔 폭발하고만다. 주로 외부에 의한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푸는 듯. 그나마 자신있는 부분은 감정복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반복되면 효과적이지 않으니 차라리 아빠에게 도움을 청해 아이를 잠시 떼놓고 끓어오르던 분노를 식힌후 아이와 다시 화해를 시도하는 편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른들과는 달리 언제나 엄마를 그리고 아빠를 용서해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정성스럽게 대책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아빠도 엄마도 잘 해내지 못 할 경우가 있을텐데 위에서 이야기 했듯 괜찮다. 이미 벌어진 일과 벌어지기 전의 일 사이에서 우리는 단호해야 한다. 되돌릴 수 없다면 차라리 너그러워져라. 즉 사후처리, 이제부턴 감정복구가 중요하다. 아이에게 사과할 부분이 있다면 사과해서 어떤 사람이던 잘못을 했을 경우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사과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배우게하고, 설령 잘못을 해도 돌이킬 방법이 있다는 것과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를, 엄마가 아빠가 전달해야하지 않을까. 유치원만 다니기 시작해도 아이에게는 이미 사회가 각박할 수도 있다. 절대적인 사랑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하루 온종일 객관적인 평가와 편견에 시달려야하는게 아이들이다. 외모가 사랑스럽다거나 예쁜말 표현에 익숙해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사랑받는 아이가 있겠고 반대로 뭐든 서툴어서 사고만 치고 안타깝지만 가만히 있어도 왠지 정이 가지 않은 아이도 있을것이다. 아이는 이제 고작 스스로 잠들고 옷입고 밥먹고 화장실에 갈 뿐인데 아이들에게 쏟아지는 평가는 어쩌면 터무니없이 무거운 짐이 아닐런지. 그런 우리 아이들에게,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에게 고작 아빠라는 권위의식 하나 붙들기위해 버럭하고 횡하니 문닫고 나가서야되겠는가. 아빠들이여, 용기를 내자! 그리고 당신의 용기를 배워 지혜롭고 사랑스러울 우리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자. 당신보다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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