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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한글은 언제부터

by 머니위너 2013. 7. 17.

요즘은 왜 문자와 숫자를 서둘리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열거하는 책들이 참 많이 나와있다. 물론 알아도 가르치는 그래도 조급한 엄마들이 더 많지만 말이다. 다행히 시은이는 이제 가르쳐도 좋을 (비교적) 한국나이 여섯살이다. (다섯살인가) 아무튼 어떤 전문가들이 말한것처럼 한글의 조합원리를 이해하는 나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그간 나도 아주 손놓고 있진 못했다. 머리는 아니라고 해도 조급한 마음에 혹은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붙이며 나역시 내 아이가 남보다 더 많이 알기를 바랬던 것 같다. 아니라면 거짓이다. 물론 아는것이 모르는 것보다는 낫다고 그나마 꾸준히 읽어준 양질의 양육서적들이 나에게 브레이크가 되어주긴 했기에 난 아이에게 강요하진 못했다. 하지만 꽤 많이 노출하고 빈도수 꽤 높게 아이에게 글자책을 들이댔다. 다만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책을 덮고선 혼자서 속만 부글부글 끓었다.  

 

시은이는 두돌때 아줌마의 도움으로 한시를 꽤 외우고 (중국은 꼬마들이 한시를 제법 외운다, 운율감이 있고 중국어의 발음과 성조 연습에 도움이 되는듯하다) 한자도 (중국어) 꽤 익혔었다. 그당시 난 한자 익히는 것에는 꽤 긍정적이였다. 왜냐하면 한자는 한글이나 영어와는 다른 상형문자이기 때문에 그림(인상)으로 기억하면 되기때문이였다. 그래서 종종 한자를 가지고 게임도 하고 맞추기도 하고 놀았더니 곧 잘 익히더라.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역시 내가 조급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꾸준하지 못했던 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이가 문자공부에 흥미가 없었다는 점을 내가 모른척하고 간과한것이다. 아이는 곧 알고있던 한자들과 한시들을 잊어갔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놀아주는 글자외에는 흥미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흥미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살펴본 '문자(언어)영재'에 속하는 아이들은 언제나 스스로 궁금해했다. 길가다가 아는 글자가 있으면 손으로 짚어가며 읽었고 모르는 글자가 있으면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물론 난 문자 영재가 다른 아이들보다 똑똑하다는 편견은 없다. 단지 다른 분야에 다른 속도로 흥미를 느낄뿐, 난 아이들 모두 각기 흥미를 느끼는 시기와 영역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무튼 시은이는 문자에는 그닥 관심을 보이지 않는듯했다. 난 강요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노출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과한 노출이 아이에게 평이한 일상으로 다가와 적당한 자극을 유발하지 못한듯하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꾸준히 해 주는것과는 관계없이 세돌부터 난 일단 한자를 내려놨다. 제법 자란 아이말이 다섯살(다섯돌)이 되면 한자공부를 하고싶단다. 그러기로 했다.

 

세돌반이 지났을까. 이번엔 한글, ㄱㄴㄷㅏㅑㅓㅕ정도는 예전에 놀이로 쉽게 익혔었지만 그 다음단계를 언제쯤 시작해야할지 생각하던 중 꽤 괜찮은 책을 발견했다. 원래 예전부터 통글자를 익히는 방식엔 긍정적이지 못했던지라 난 시은이가 한글의 원리를 깨달을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리던 중이였고 (통글자를 익힐 경우 글자 하나하나를 떼어놓으면 아이가 식별하지 못한다, 즉 그림을 외운 원리) 마침 한글의 조합원리를 이해시키는 방식의 교제를 발견한 것이다. 게다가 마치 내게 이제 시작하셔도 됩니다. 라고 말하듯 책표지엔 만4세용이라고 씌어져있었다. 난 이번엔 먼저 꼬마숙녀의 의사를 물었다. 엄마말을 언제 배우고싶니? 라고. 네살 생일이 지나면 하겠단다. 그래, 난 또 기다렸다.

 

그리고 난 정말 네돌 생일이 지나고 그 교제를 펼쳤고 조금씩 조금씩 보여줬다. 이전보다 꽤 수월했지만 여전히 아이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 해 속도를 늦췄는데(흥미를 느끼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알아채는건 생각보다 쉽다. 아이가 방금 가르쳐 준 단순한 학습내용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그건 십중팔구 흥미가 없는것) 어느날부터인가 동화책을 읽어줄 때 아는 글자를 발견하곤 반가워하기 시작했다. 아, 드디어 시은이에게도 시기가 온 것인가! 라고 느낀것이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닌 바로 최근의 일이다. 즉 내가 이 글을 쓰기엔 아직 이를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지금이 지나면 나의 지난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교훈들이 내게서 깨끗이 잊혀질 것만 같아서 이렇게 서둘러 글로 옮겨본다. 

 

우리는 아이를 충분히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 하지만 결코 기다려줘야 한다는 것이 내버려 둔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냥 내버련 둔 아이들 중에 상당수가 (특히 우리 세대 아이들: 아이의 흥미와 기질보다는 아이의 안전과 성장에만 관심을 쏟기에도 분주했던 시절) 스스로 연필을 들었고 스스로 공부벌레가 되었지만 그 아이들은 충분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에 학습외 본연의 꿈을 발견하고 추구하고 또 이루는 작업이 상당히 더뎌진 케이스가 아닐까라고 난 생각해본다. 즉 내버려두는 편 보다는 약간의 시행착오를 격더라도 평소 아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에 관심을 쏟고 아이와 대화하고 교류하는 방법으로 아이의 학습시기와 흥미영역을 알아채는 것이 더 나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는데, 난 사람들이 외국어를 배우는 모습을 보고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아이에게 조급하게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것이 왜 중요하지 않은지. 아가들은 아이언어가 있다. 이이아아..하면서 배고프다고하고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점차 사물을 관찰하고 그 생김새과 성질을 기억한다. 그 후 점차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데 예를들어 사과를 관찰한 아이가 사과는 빨갛고 동그랗구나 라고 생각할것이지만 사과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건 아주 나중의 일이라는 것이다. 더 나중엔 사과를 영어로 apple이라고 하는것을 알게되겠지만 아이가 apple을 모른다고 사과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더 쉽게 말해 내가 시은이에게 한국어로 결혼이라는 단어를 말하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 주었는데 얼마후 그것을 풀어서 중국어로 '여자와 남자가 함께 사는것'이라고 설명해낸다면 그것은 아이가 결혼이란 단어를 지식적으로 잘 못 알고있는 것이 될까. 사물의 이름과 아주 많은 지식적인 것들은 사람들이 배움의 속도를 내기 위해 정의하고 이름지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은 인간의 편리를 위해서고 물론 덕분에 세상은 눈부시게 발전하지만 난 내가 격은 수많은 시행착오 내지는 진리를 구하는 더딘 여정이 늦더라도 결국은 배움의 질을 높여주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강요된 학습보다는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훨씬 더 효과적인 것이 아닐까. 즉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되려면 위에서 말한 '흥미'를 스스로 발견하고 동시에 그 시기를 충분히 지원하며 기다려 줄 수 있는 너그러운 부모가 곁에 있는것이 꽤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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