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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동동이는 힘이 쎄요_120829

by 머니위너 2013. 7. 17.

퇴근후 돌아와 언제나처럼 아이에게 한마디 물었다.  

 

엄마: 시은아, 오늘은 유치원에서 뭐 화나는 일 속상한 일 없었어?

 

시은: (밥먹으며) 응, 없었어.

 

엄마: 그렇구나.

 

시은: (다시 맘을 바꾼듯) 속상한 일 있었어.

 

난 다시 촉각을 세우기 시작한다.

 

아이의 마음은 수시로 변하기때문에 난 다시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때 원칙은 과하게 묻지 말아야한다는 점,

 

중간에 아이말을 자르지도 말고 훈계하지도 않는다.

 

가급적이면 '응' '그랬구나''그랬는데''아 저런'식의 가벼운 대답으로 아이와의 대화를 이끌어나간다.

 

 

 

아이가 이야기를 계속 해 나간다.

 

시은: 내가 블럭을 가지고 놀고있는데 쥬쥬랑 동동이가 와서 망가트렸어.

 

        그래서 내 속에 엄마 마음이 폭발한거야.

 

여기서 엄마마음이라 함은 지난밤 동화책을 보고 기억한 듯 하다.

 

엄마가 나눠준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나누어준다는 뭐 그런 내용의.

 

 

 

엄마: 그랬구나, 깜짝 놀라고 화났겠다.

 

시은: 응~!

 

엄마: 시은이가 열심히 쌓은 블럭이였을텐데 너무 아깝다.

 

시은: (표정이 매우 고무적이다)

 

엄마: 그래서 어떻게 됬어?

 

시은: 쥬쥬가 울었어.

 

엄마: 쥬쥬가 왜 울었을까?

 

시은: 내가 화가나서 쥬쥬한테 너랑 안놀아 라고 했거든.

 

"너랑 안놀아"라는 말은 유치원에서 배우더니 유치원에서 잘도 써먹는다.

 

 

 

엄마: 쥬쥬는 기분이 어땠을까.

 

시은: 쥬쥬는 마음이 아팠을거야.

 

엄마: (일반적인 상황을 떠올리며) 시은이는 울었어?

 

시은: 응, 그냥 눈물만 쭈르륵 흘렸어, 안울고.

 

평소 소리내서 엉엉우는 시은이치고는 꽤 참은셈이다.

 

 

 

 

엄마: 그런데 동동이는?

 

시은: 동동이한텐 암말 안했어.

 

엄마: 그래?

 

시은: 동동이는 일부러 블럭을 넘어트리고 쥬쥬는 일부러 그런게 아니야.

 

이때 난 내 귀를 의심하며 몇번이고 되무는바람에 하마트면 시은이가 이야기하기를 멈출뻔했다는.

 

 

 

시은: 동동이는 힘이쎄.

 

유치원의 동동이란 아이는 다루기 힘든 아이다.

 

욕설도 폭력도 서슴치않는편이고 안타깝게도 그 부모님도 비슷하게 보이는 사람들이다.

 

해서 사실 난 시은이 입에서 '동동이'란 이름이 나올때부터 긴장하고 있었다.

 

 

 

시은: 동동이가 날 때릴까봐 동동이한테는 화를 안냈어.

 

 

 

순간.

 

난 방향을 잃은듯 휘청거렸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즉 시은이는 그 둘에게 화가났지만 동동이는 무서워서 화를 못내고 그만 쥬쥬에게 화를내고 만 것이다.

 

다만 난 아이에게 일어난 단 한 사건때문에 들었던 내 '실망스런' 기분에 잠시 부끄러웠고,

 

사실 시은이의 그런 마음이 십분 이해가됬기에 일단 아이를 긍정해줬다.

 

 

 

엄마: 그래, 동동이가 친구들을 자꾸 때리니까 시은이가 무서웠구나?

 

시은: 응.

 

엄마: (일단 걱정이 되서) 시은이는 동동이한테 맞은적 없고?

 

시은: 없어.

 

엄마: 그래, 시은이가 그렇게 시은이를 보호한건 엄마는 잘 했다고 생각해.

 

나는 그 일에 대해 (동동이에게 화를 내지 못한일) 뭐라고 해 줄 말이 아직 없었다.

 

그리고 내심 난 아이 스스로 경험하고 그에 대처하는 지혜를 구하길바라고있다.

 

 

 

엄마: 그런데 시은이는 누가 잘못한 것 같아?        

 

사실 이런 질문도 내키진않지만 난 혹여 아이가 무엇인가 잘못 판단하고 있을까 노파심이 든다.

 

 

 

시은: 동동이가 잘못한거야.

 

엄마: 그럼, 쥬쥬는?

 

시은: 쥬쥬랑은 안놀아, 오늘은.

 

엄마: (오늘은 이란 단어가 크게 들린다) 오늘은?

 

시은: 응, 마음이 폭발했으니까.

 

엄마: 그럼, 내일은?

 

시은: 내일은 친구할거야.

 

엄마: 그래? 잘됬다.

 

 

 

길고 복잡한 이야기였는데,

 

긴 이야기가 끝나고 곁에서 듣다가 호기심을 느낀 아빠가 다가와 중국어로 다시 물어볼땐 아이는 이미 말하고싶지 않아졌다.

 

 

 

난 마치 의식처럼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엄마: 시은아.

 

시은: 응~ (마치 알고있다는 듯 부드럽게 처다본다)

 

엄마: 고마워, 시은이 속상한 이야기 엄마한테도 해줘서.

 

아이는 조금은 부끄럽게 고양이처럼 내 팔에 얼굴을 부빈다.

 

 

 

난 이번엔 그냥,

 

사랑스런 내 아이가 조금은 비겁했던 이야기를 일단 묻어두기로한다.

 

오늘은 간만에 손 인형극 할 거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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