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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배움의 적시_120831

by 머니위너 2013. 7. 17.

시은이가 드디어 유치원 중반에 들어갔다. (중국은 유치원이 소/중/대반으로 나뉘어진다)

 

아침부터 어찌나 설레어하던지 의젓해 진 면은 말 할 것도 없겠다.

 

중반에 가면서 가장 가까운 변화는 바로 '젓가락 쓰기'인데,

 

시은이는 젓가락질을 잘하는 것이 꽤 자랑스러운지 엄마 얼굴이 붉어질만큼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질이다.

 

 

 

아래 곧 이야기하겠지만,

 

사실 젓가락질을 하게된 과정은 내게 아주 커다란 교훈을 가져다주었다.

 

 

 

두 돌 반이였을까.

 

아니 어쩌면 그보더 훨씬 더 전이였을지도 모른다.

 

난 어디선가 보았던 젓가락질 놀이를 시은이와 함께 시도했다.

 

젓가락으로 동그랗게 만든 찱흙을 집는 놀이다.

 

이시기 이와 마찬가지로 난 여러가지 게임들을 시도했지만,

 

아이는 젓가락으로 찱흙을 멋지게 찍어올리는 이상은 해내지 못했었다.

 

그 외에도 수건 돌리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두살 아이 입장에서 좀 복잡한 놀이로는 삼각형 만들기 놀이, 스무고개,

 

시장에 가면 놀이, 미로 등,

 

내가 어렸을때 즐겨했던 놀이들을 정리해서 프린트해놓고 아이 그리고 아이아빠와 함께 놀았다.

 

흠. 그림만 떠올렸을때 참 아름다운 그림. 

 

하지만 아무래도 난 전문가가 아니니 그 연령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경험하며 발견하는 수 밖에 없었는데,

 

바로 이 부분이 문제였다.

 

내 머리는 이미 딱딱하게 굳어졌고,

 

난 내 두 세 살 때의 일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난 유치원 선생님도 아니고 아이를 키워본 경험조차도 없다.

 

그리하여 즐거운 놀이가 될 수도 있었던 몇가지 놀이는,

 

결국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하고 아이에게 스트레스만 가중하는 셈이 되어버렸다.

 

 

 

예를들어,

 

두 돌 넘어서 했던 삼각형 놀이는 정말 내 속을 터트릴것 같은 놀이중 하나였다.

 

종이 한장에 수많은 점을 찍어놓고 점끼리 이어 누가더 많은 삼각형을 만드는지 내기하는 놀이다.

 

햐.......

 

이거 간단한데.... 하며 아무리 설명해도 해내지 못하는 아이를 붙들고 난 한숨을 푹푹 내리쉬었고,

 

짜증이 난 아이는 급기야는 눈물을 터트렸다.

 

물론 두번째 삼각형 놀이는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고 그때 아이는 이미 수월히 이 놀이를 해냈다.

 

 

 

그리고 미로.

 

세돌 때였나 우연히 미로를 접하게 된 아이는 한동안 미로에 빠져 지냈다.

 

아이가 즐거워하니 난 뚝딱 뚝딱 아이에게 미로책을 사 주었는데,

 

유독 입체미로는 어려워하는 것이다. (예: 다리위로 지나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설명해주니 그 룰은 익히는것 같았지만,

 

끝끝내 아이는 입체적인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끄럽지만 그때 역시 한숨 푹푹 쉬어가면 "왜 이걸 모를까..."했던 무지한 엄마인 나.

 

 

 

암튼 몇 차례의 체험으로 인해 왜 단계적인 학습이 중요한 지 깨달아가던 중,

 

젓가락질을 통해 난 결정적인 확신을 갖게되었다.

 

무엇이든 아이의 발달과 흥미에 맞는 적시가 있으니 충분히 기다려야한다는 것.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뻔한걸 뭘 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치 '인간은 도덕적이어야한다' 라는 흔한 진리앞에서 이론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그 진리를 이행해내는 과정과 결과가 결코 다르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다행이였다, 아직 늦지 않아서.

 

 

 

시은이가 세돌이 좀 지나서 유치원에서 네돌이 되면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당시 시은이는 젓가락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지라,

 

마음이 분주해진 나는 아이에게 젓가락을 들이대며 또다시 한숨짓고 권하기를 수차례 반복했었다.

 

물론 대충 예상할 수 있겠지만,

 

긴시간의 단련으로 대부분의 시간에 난 아이에게 충분히 관대하고 친절했지만,

 

여전히 간간히 범하는 인간적이거나 본능적인 실수를 나는 부정할 수가 없다.

 

 

 

그래도 좀 날 용서할 수 있는 부분은,

 

아이에게 최소한 며칠동안 같은 실수를 하진 않는다는 것.

 

아무튼 다시 난 그 날 이후로 젓가락 권하기를 철저히 포기했고,

 

대신 밥을 먹을때 젓가락을 옆에 놔두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세 돌 반 쯤이였을까.

 

식사시간 아이는 문득 자기가 젓가락질을 해 보이겠다고 했고,

 

정말 한번에 반찬을 들어올려 우릴 감격시켰다.

 

모르겠다, 누가 어떤 자극을 주었는지는.

 

아이가 왜 구태여 그날 젓가락질이 하고싶었는지는 말이다.

 

 

 

 

사실 여기서 가장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그 진리의 내용이 아니다.

 

돌아보면 난 사실 아이의 기저귀도 같은 방법으로 떼냈었다.

 

하지만 잊은것이다.

 

그리고 그 외에 내 인생에도 가끔씩 같은 깨달음이 찾아오고 찾아 올 것이다.

 

하지만 또 잊고지낸것이다.

 

 

 

 

정리하자면,

 

진리는 깨달아야하고 깨달은 것은 이행해야하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망각하지 않고 꾸준해야한다는 점.

 

그리하여 난 요즘 아이의 한글공부에 적용하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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