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은이가 드디어 유치원 중반에 들어갔다. (중국은 유치원이 소/중/대반으로 나뉘어진다)
아침부터 어찌나 설레어하던지 의젓해 진 면은 말 할 것도 없겠다.
중반에 가면서 가장 가까운 변화는 바로 '젓가락 쓰기'인데,
시은이는 젓가락질을 잘하는 것이 꽤 자랑스러운지 엄마 얼굴이 붉어질만큼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질이다.
아래 곧 이야기하겠지만,
사실 젓가락질을 하게된 과정은 내게 아주 커다란 교훈을 가져다주었다.
두 돌 반이였을까.
아니 어쩌면 그보더 훨씬 더 전이였을지도 모른다.
난 어디선가 보았던 젓가락질 놀이를 시은이와 함께 시도했다.
젓가락으로 동그랗게 만든 찱흙을 집는 놀이다.
이시기 이와 마찬가지로 난 여러가지 게임들을 시도했지만,
아이는 젓가락으로 찱흙을 멋지게 찍어올리는 이상은 해내지 못했었다.
그 외에도 수건 돌리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두살 아이 입장에서 좀 복잡한 놀이로는 삼각형 만들기 놀이, 스무고개,
시장에 가면 놀이, 미로 등,
내가 어렸을때 즐겨했던 놀이들을 정리해서 프린트해놓고 아이 그리고 아이아빠와 함께 놀았다.
흠. 그림만 떠올렸을때 참 아름다운 그림.
하지만 아무래도 난 전문가가 아니니 그 연령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경험하며 발견하는 수 밖에 없었는데,
바로 이 부분이 문제였다.
내 머리는 이미 딱딱하게 굳어졌고,
난 내 두 세 살 때의 일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난 유치원 선생님도 아니고 아이를 키워본 경험조차도 없다.
그리하여 즐거운 놀이가 될 수도 있었던 몇가지 놀이는,
결국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하고 아이에게 스트레스만 가중하는 셈이 되어버렸다.
예를들어,
두 돌 넘어서 했던 삼각형 놀이는 정말 내 속을 터트릴것 같은 놀이중 하나였다.
종이 한장에 수많은 점을 찍어놓고 점끼리 이어 누가더 많은 삼각형을 만드는지 내기하는 놀이다.
햐.......
이거 간단한데.... 하며 아무리 설명해도 해내지 못하는 아이를 붙들고 난 한숨을 푹푹 내리쉬었고,
짜증이 난 아이는 급기야는 눈물을 터트렸다.
물론 두번째 삼각형 놀이는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고 그때 아이는 이미 수월히 이 놀이를 해냈다.
그리고 미로.
세돌 때였나 우연히 미로를 접하게 된 아이는 한동안 미로에 빠져 지냈다.
아이가 즐거워하니 난 뚝딱 뚝딱 아이에게 미로책을 사 주었는데,
유독 입체미로는 어려워하는 것이다. (예: 다리위로 지나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설명해주니 그 룰은 익히는것 같았지만,
끝끝내 아이는 입체적인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끄럽지만 그때 역시 한숨 푹푹 쉬어가면 "왜 이걸 모를까..."했던 무지한 엄마인 나.
암튼 몇 차례의 체험으로 인해 왜 단계적인 학습이 중요한 지 깨달아가던 중,
젓가락질을 통해 난 결정적인 확신을 갖게되었다.
무엇이든 아이의 발달과 흥미에 맞는 적시가 있으니 충분히 기다려야한다는 것.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뻔한걸 뭘 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치 '인간은 도덕적이어야한다' 라는 흔한 진리앞에서 이론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그 진리를 이행해내는 과정과 결과가 결코 다르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다행이였다, 아직 늦지 않아서.
시은이가 세돌이 좀 지나서 유치원에서 네돌이 되면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당시 시은이는 젓가락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지라,
마음이 분주해진 나는 아이에게 젓가락을 들이대며 또다시 한숨짓고 권하기를 수차례 반복했었다.
물론 대충 예상할 수 있겠지만,
긴시간의 단련으로 대부분의 시간에 난 아이에게 충분히 관대하고 친절했지만,
여전히 간간히 범하는 인간적이거나 본능적인 실수를 나는 부정할 수가 없다.
그래도 좀 날 용서할 수 있는 부분은,
아이에게 최소한 며칠동안 같은 실수를 하진 않는다는 것.
아무튼 다시 난 그 날 이후로 젓가락 권하기를 철저히 포기했고,
대신 밥을 먹을때 젓가락을 옆에 놔두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세 돌 반 쯤이였을까.
식사시간 아이는 문득 자기가 젓가락질을 해 보이겠다고 했고,
정말 한번에 반찬을 들어올려 우릴 감격시켰다.
모르겠다, 누가 어떤 자극을 주었는지는.
아이가 왜 구태여 그날 젓가락질이 하고싶었는지는 말이다.
사실 여기서 가장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그 진리의 내용이 아니다.
돌아보면 난 사실 아이의 기저귀도 같은 방법으로 떼냈었다.
하지만 잊은것이다.
그리고 그 외에 내 인생에도 가끔씩 같은 깨달음이 찾아오고 찾아 올 것이다.
하지만 또 잊고지낸것이다.
정리하자면,
진리는 깨달아야하고 깨달은 것은 이행해야하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망각하지 않고 꾸준해야한다는 점.
그리하여 난 요즘 아이의 한글공부에 적용하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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